2024년 4월 월례모임..창설자 방유룡 레오 (무아 안드레아) 신부님

by 천안지부 posted Apr 1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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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속 복자회 천안지부 4월 월례모임 ▣

 

*일시 : 2024년 4월6일(토)

*참석인원 : 69명

 

 진행 순서 및 내용

 

1. 오전 – 성당, 교육관

 09:30 ~ 시작 및 호칭기도

 10:00 ~ 미사(성당)

 11:00 ~ 강의 I (교육관) - 이승희 로사 수녀님

 12:30 ~ 삼종기도(낮기도 개인)

 

2. 오후 – 교육관

 12:30 ~ 13:30 점심식사

 13:30 ~ 15:00 강의 II (교육관) -  이승희 로사 수녀님

 15:00 ~ 15:20 회장님 공지사항

 15:20 ~ 16:00 청소

 16:00 ~ 마침기도

        

 

 ◆ 강의 I , II 이승희 로사 수녀님

 

주제 : 창설자 방유룡 레오 (무아 안드레아) 신부님

 

1.탄생과 유아세례

  - 탄생 : 1900년3월6일(음) ,4월5일(양) 서울 정동 탄생 (부친 방 베드로, 모친 손 아녜스)

              정동(태조의 신덕왕후 '정릉'이 있던 곳

  - 유아세례 : 1900년4월7일 해방 전 종현성당 해방후 명동대성당 (김영면 요셉 대부로 하여 빅돌신부에게 세례받음)

                     프와넬 부주교님께 세례받음

                     프와넬 부주교님은 1855년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 출생으로 1883년 드게트 신부를 따라 조선에 입국했으며 30여년간 성당과 부속건물의 설계 및 건축 담당

                     대표적 성당은  용산 신학교 성당, 전주 전동성당, 명동성당, 익산 나바위성당, 대구 계산성당의 건축을 담당했다.

 

2.가족과 신앙의 유산

  - 조부 방제원 방지거 사베리오 (?-1898)

    : 명성 높은 한학자

      조선대목구 제7대 블랑 주교와 제8대 뮈텔 주교의 한문선생님

      산성인이라는 별명을 들음

      배천사건으로 집과 재산은 몰수한 후 해당 도를 떠나는 조건으로 배교없이 풀려난 신자로서 첫 사건

  - 부친 방경희 베드로 (1862-1911)

    : 1870년 수업 한문, 1885년 청국 공독, 1886년 영어 동문학 입학

      1888년 인천 영국공사관 문안 고용

      1895년 미국공사관 번역 고용 

      1905년 10월 예식원 장악과 주사임용

      1907년 3월 승 6품 

 - 누님 방순경 루시아 (1897-1978)

   : 1897년 음력 5월11일(양 6.10) 서울에서 방경희 베드로와 손유희 아녜스의 6남매 중 장녀로 출생

     11세 관립 한성고등여학교 예비과 합격, 1909년 본과 승급, 1911년  제1회 졸업

     17세 초대 여판임관, 소학교 교사로 4년 근무

     1923년 동경여자고등사범학교 가정과 합격

     1927년 졸업 후 귀국, 부산공립여자고등학교 교사 재직 

     1946년 수도여고 개교, 초대 교장 취임

     1961년 무학여고 교장으로 퇴임

     1978년 10월 9일 선종

     

3.방유룡 신부님의 유년기

: 3대가 함께 사는 한국의 전통적 가족 관계, 부족함이 없는 집안

  개구장이 방유룡 - 부모님으로부터 꾸중을 모르고 성장 

  담뱃불 심부름으로 12세가 되었을 때 시작된 흡연은 소신학교 지도 신부님께 주의 말씀을 듣고 금연 시작 그 후 40세 이후 다시 흡연

 

4.시련의 청소년기

: 1907년 조모, 1911년 부친 선종

  가세가 기울어져 서울 사대문 안에서 생활하기 어려워지자 모친 손 아녜스는 세 형제와 두 자매를 데리고 한강 이남의 남태령에이사

  견진 성사는 경기도 수원군 의왕면 하우고개 본당에서 민아오스딩 주교의 주례로 김 복사를 대부로 하여 성사를 받음

 

5.뒤늦은 초중등 교육 

 : 큰 형님 방유린의 주선으로 '정동 공립 보통학교' 편입학 1916년 4월 13일 졸업

   실업계인 '미동 간이농업학교'로 진학 - 삶의 진로를 번민, 사제 성소에 응답

 

6.용산 신학교 입학

  :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1917년 6년 만에 신입생 모집 - 신입생 68명 중 나이 순으로 15번째

    용산 예수성심 신학교(함벽정신학교)

    1887년 강원도(=여주) 부엉골에서 서울 함벽정으로 신학교 이전

    1891년 소신학교(한옥), 1902년 성당, 1911년 대신학교, 1914년 소신학교(양옥)건립

    1929년 혜화동으로 소신학교 이전(조선총독부의 무허가 폐교 조치로 1942년 폐교)

 

7.종로깍쟁이 방 레오

   : 서울 출신의 중등 교육으로 영어 능통

     동기들과 6~8살의 나이차이로 조숙한 편

     싸움과 장난이 심해 "종로깍쟁이"

     신학교 입학 후 2~3년간 사치스러운 생활

 

8.방 레오의 회심

  : 두번째 방학 후 선언 "오늘부터 나는 성인이 된다"

    엄격하게 규칙 준수, 화도 안내면서 말수도 줄였으며 동정도 달지 않은 검정 무명 두루마기의 검소한 차림 "방수사"

 

9.신학생들의 3·1 만세 운동( '하느님의 이름'으로 만세운동 참여 금지 - 무조건 순명 요구, 불응자는 퇴학 또는 징계, 서품도 주지 않기로 결정

  :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3월5일 교장의 만류를 뿌리치고 60명의 신학생들이 운동장에 모여 '독립가'를 부름

    서울 예수성심 신학교 (3월23일 밤 9시 대신학생들이 만세 시위에 참여

 

10.신학교 생활

   : 엄한 교육과 훈련, 철저한 규칙속에 공동생활 수행

     침실에 나타난 박쥐 소동으로 침묵 규칙을 범하게 되고 이로 인해 성령강림대축일 미사때 영성체도 못하였으며, 고기국과 과자도 못먹었다.

     신학교 별장 동지기 가는 날은 매 목요일이였으며, 신학교 생활 13년동안 매 목요일 동지기를 갔으니 동지기를 잊을 수 없다.

     방 레오의 용감성으로 강아지만한 독수리새끼 두 마리를 아래로 내려 보내고 신학교에서 길렀으며 그 후 동물원에 팔게 되어 매우 섭섭해 했다.

 

11.신학교의 복자 김 신부 신심

   : 1902년 6월23일 김대건 신부 유해를 신학교 성당 내 안치

     1953년 휴전 후 두개골을 혜화동 신학교로 모심

 

12.19C 영성과 신심(신학교의 예수성심 신심)

   : 예수성심 공경 신심

      성체조배 신심

     '성모 발현'과 성모 신심

      

13.신학교의 성모 신심

   : 19C 신비 체험가 '아기 예수의 데레사'

 

14.신학 과정과 수품

   : 라틴어과 (중등과, 6년) 1917년 9월 15일 ~ 1923년 6월

      철학과(별과, 2년) 1925년 6월 15일 수료

      신학과(본과, 4년) 1930년 10월 26일 수료

      삭발례 12명 1926년 5월 23일 일요일 10:00

      소품(수문/강경품) 10명 1927년 6월 11일 토요일 6:30

             (구마/시종품) 10명 1928년 6월 2일 토요일 6:30

      대품(차부제품) 10명 1929년 5월 25일 토요일 8:30

             (정부제품) 8명 1930년 4월 5일 토요일 8:30

      사제품 6명 1930년 10월 26일 일요일 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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