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창설자 방유룡 신부의 영성
교회 전통 안에서 영성 생활의 여정으로 제시되는 ‘정화·조명·일치’를 창설자 방유룡 안드레아 신부는 ‘침묵·대월·면형무아’로 설명한다. 그에 의하면 완덕은 ‘점성정신’으로 시작하여, ‘침묵’으로 길을 찾아, ‘대월’로 조명하여 ‘면형’ 안에서 하느님과 일치되는 것이다.
1. 점성정신點性精神
‘점성정신點性精神’, 점의 영성은 ‘점點’의 ‘성질’을 일컫는 ‘점성點性’이라는 단어와 마음의 자세나 태도를 일컫는 ‘정신精神’이라는 단어를 합쳐 만든 방유룡 신부의 고유한 영성 용어이다.
기하학에서 ‘점’은 모든 도형의 궁극적 구성 요소인 가장 단순한 도형으로서, 위치만 있고 크기가 없는 것이면서도 모든 도형의 기초가 된다.
이렇게 존재하기는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점’이 가진 특성 안에서 방 신부는 겸손의 극치를 발견하고, 이 ‘점’이 자신을 완전히 비우고 ‘성체가 면형’이 되신 그리스도와 닮았다고 말한다.
바로 이 ‘점’처럼 작은 자 되어, 일상 안의 작고 미소한 일에 충실하고(신명 30,11-14; 마태 25,14-30; 마태 5,17-20; 마태 13,31-32), 겸손하게 살아가도록 하는(루카 18,9-14) 것이 ‘점성정신’이며, 이것이 수도 생활의 기초이며 뿌리가 된다고 가르친다. 이것이 우리가 ‘성체가 면형’이 되신 주님께로 가는 ‘출발점’이요, ‘길’이다.
방 신부는 이 ‘점성정신’을 세 가지 차원으로 구분하여, 삶 안에서 이를 실천하도록 가르친다.
1) 일반적으로 본 점성정신 : 매사에 알뜰하고, 빈틈없고, 정성스럽고, 규모있게 함으로 모든 이에게 봉사하는 것
2) 신덕으로 본 점성정신 : 믿음으로 미소한 일에 충실하며 하느님 마음에 들고 기쁘게 해드리는 것.
3) 수도 정신으로 본 점성정신 : 사욕 없는 마음으로 무아가 되어 하느님께 드리는 흠숭 예물이 되는 것.
2. 침묵沈默
방 신부의 영성 안에서 ‘침묵沈默’은 ‘말 없음’, 혹은 ‘말하지 않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아를 극복하는 하나의 길’이다.
이는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그분을 따르기 위해 자기 자신은 물론 하느님 아닌 일체의 것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는 것으로, 수도 생활의 영적 여정 가운데 ‘정화淨化’에 해당되는 것이다.
방 신부는 이 ‘침묵’을 ‘육신 내적 침묵’(분심 잡념과 사욕의 침묵), ‘육신 외적 침묵’(이耳, 목目, 구口, 비鼻, 수족手足, 동작動作의 침묵), ‘영혼의 침묵’(이성과 의지의 침묵)으로 구분하고, 이것을 ‘완덕完德’을 위한 5개의 길(완덕오계) 안에 담아 수행하게 한다.
완덕오계完德五誡는 다음과 같다.
1) 분심잡념을 물리치고
2) 사욕을 억제하고
3) 용모에 명랑과 평화와 미소를 띠고
언사에 불만과 감정을 발하지 말고
태도에 단정하고 예모답고 자연스럽게 하고
4) 양심불을 밝히고
5) 자유를 천주께 바치고 그 성의를 따를지니라.
3. 대월對越
‘대월對越’은 초기 한국 교회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과 마주함’, 혹은 ‘하느님의 현존을 묵상함’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방 신부는 이 말을 자신의 영성 체계 안에 받아들여, ‘대월은 하느님 싫어하시는 모든 잡념과 분심을 뛰어넘고, 사욕을 억제하여 빛이신 하느님과 대면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렇게 빛으로 오시는 주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수도 생활이며 ‘대월생활’이라고 가르친다. 즉, 침묵으로 자신을 버리고 정화된 영혼은 모든 것을 초월하여, 성령 안에서 그분을 마주 뵈오며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으로, 수도 생활의 영적 여정 가운데 ‘조명照明’에 해당되는 것이다.
방 신부는 요한복음에 나타난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안에서 ‘대월생활’의 모범을 발견하고, 한 영혼이 어떻게 하느님과 친교를 맺으며 일치에로 진보해야 하는지, 주님의 말씀 안에서 길을 찾아 ‘대월 5단계’로 정리하여 수행하게 한다.
대월의 5단계는 다음과 같다.
1단계 : 나는 내 자작으로 아무것도 아니한다(요한 8,28ㄱ 참조).
2단계 : 나는 아버지께서 가르쳐주신 것을 말하고 행한다(요한 8,28ㄴ 참조).
3단계 : 나는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는 바를 항상 해드린다(요한 8,29ㄴ 참조).
4단계 :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는 항상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는다(요한 8,29ㄴ 참조).
5단계 : 내가 하는 모든 일은 아버지 친히 하시느니라. 하느님 내 안에 들어가서 내 영혼 노릇을 하시니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아버지가 행하시는 것이다(요한 14,10ㄴ 참조).
4. 침묵대월沈默對越
“침묵의 절정이 대월”이라 말하는 방 신부의 영성 안에서, ‘침묵’과 ‘대월’은 하나의 단어처럼 연결되어 ‘침묵대월沈默對越’의 형태로 사용된다. 실제로 ‘침묵’ 없이 ‘대월’이 있을 수 없으며, ‘침묵’은 자신을 버리고 죽음으로 모든 것을 초월하여, 성령의 빛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 그분과 일치하는 ‘대월’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5. 면형무아麵形無我
방 신부의 영성 안에서 ‘면형무아麵形無我’는 영적 여정 가운데 ‘일치一致’에 해당되는 것으로, 초기 한국 교회 안에서 ‘성체’를 뜻하는 말이었던 ‘면형麵形’과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기 위해 자신을 온전히 비운 상태를 의미하는 ‘무아無我’가 연결된 말이다.
방 신부는 면형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인간이 되어 오시어,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신을 온전히 비우시고(필리 2,7-8 참조) 마침내 ‘면형’이 되신 하느님 사랑의 절정, 케노시스의 절정을 만난다.
그리고 방 신부는 마치 누룩 없는 빵이 성체가 되는 것처럼, 우리도 자신을 비우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면 ‘면형무아’가 되어,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갈라 2,20)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가야 할 곳이 바로 그 ‘면형’이니, ‘면형’ 안에 계신 주님과 일치되기 위해 우리도 ‘면형무아’가 되어야 하며, 이것이 우리의 ‘성소聖召’라고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