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양성자반 모임 - 완덕오계 제4계 양심불을 밝히고

by 부산복자회 posted Nov 3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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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월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재속복자회 양성자반모임

 

일 자 : 119() 12~16

장 소 : 오륜대 수녀원

참석인원: 82(봉사자 포함)

지도수녀: 김경희 루시아 수녀

진행 순서

12:00~12:30 만남 (간식 및 회비납부)

12:30~13:00 시작기도

14:00~15:00 강의 : 김경희 루시아 지도수녀

(주제:완덕오계 제4- 양심불을 밝히고)

15:00~15:30 운영 보고 및 공지사항

 

강의 내용

주 제: 완덕오계 제4-양심불을 밝히고

 

완덕오계 제4계 양심불을 밝히고

완덕오계

1~3: 육신 내.외적 침묵

4~4: 영혼침묵인 이성과 의지침묵

사람: 동물성+이성과 의지를 가진 영적 존재, 하느님을 닮은 존재론 창조됨

이성에는 양심. 의지에는 자유가 있어 사람은 다른 동물들과 구별된다

- 사랑은 육신과 영혼을 가진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시작부터 완전한 인간이 되기 까지의 전 생애를 영성생활이라고 한다

집 짓는데 4개의 기둥이 필요하듯 우리의 영적 삶에 필요한 4가지 기둥

- 신덕: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으로 받아들이고 계시 신앙을 믿는 신앙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삶은 영적 삶이 될 수 없다. 신덕은 만덕의 뿌리이다

- 은총: 창조시초부터 인간을 신화하시고자 하시는 하느님은 당신 은총을 무한히 내려주신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다

- 성의: 인간을 성화하기 위해 무한한 은총을 주시는 하느님께는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의 협조가 필요하다. 하느님의 진리를 받아들이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여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려고 침묵대월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성의노력은 영적 삶이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된다

- 양심: 인간의 협조인 성의 노력이 성총(은총)과 만나는 자리가 하느님과 내밀하게 홀로 만나는 지성소인 양심이다. 양심은 하느님의 말씀이며 생명이요 빛이기에 하느님이 우리를 보시는 눈이고 아시는 자리이며 우리에겐 하느님의 소리이고 하느님을 뵈옵는 영혼의 눈이며, 하느님의 뜻 즉 천명이다.

 

사람이 타고난 천성중에 자유와 양심이 제일이다

하느님의 빛인 양심은 하느님이 주신 천성이요 천명이며 우리가 반드시 따라야 할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 기능이며 영성생활의 전 여정에 함께하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 양심은 하느님의 빛이 인간 깊은 마음에 스며들어 인간 본성의 가장 깊은 욕구인 하느님의 진리를 향하도록 하며, 하느님과 인간이 사랑의 대화를 나누는 장소이며, 하느님의 목소리

방유룡신부

- 양심은 하느님께로 향하도록 주어진 하느님의 빛, 마음 깊이에서 이끄시는 그분의 말씀

- 양심을 통해 하느님이 빛을 비추시고 인간은 자유로 이를 받아들이는, 행위의 장으로써 양심은 내적 기능이 아니고 그 사람의 인격의 중심이요 주체인 마음이 된다. 내재하시는 하느님이신 성령께서 활동하시는 자리가 된다

- 방 신부는 양심=마음, 같은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 양심불에 대한 고찰에는 방 신부가 이토록 중요시하는 양심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인 전제가 되어야 한다

 

(1) 양심

육신생명은 영혼에 달려있고 영혼생명은 양심에서 온다. 영혼의 복된 생명은 빛인데 이빛 또한 양심에서 온다. 영혼의 음식은 말씀이며 말씀은 생명이요 빛이다. 이 생명이 하느님의 생명이요, 이 빛이 하느님의 빛이다. 바른 양심이 빛을 받고 이 빛은 복된 생명을 준다.

육신이 먹어야 사는 것처럼 양심은 밝아야 산다.

방 신부가 가르치는 양심

- 인간이 하느님께로 향하도록 주어진 하느님의 빛이고 마음 깊이에서 이끄시는 그분의 말씀이고 소리

- 영성생활에서 양심은 우리를 당신께로 이끄시고 당신과 하나 되기를 원하시는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으로 그 안에서 하느님께서 직접 작용하시는 인격과 신격의 만남으로까지 고양된 의미를 갖는다

- 양심: 교회전통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양심에 대한 가르침은 방 신부의 양심에 대한 생각을 튼튼하게 뒷받침해 주고 있다

 

2차 바티칸 공의회

양심은 인간이 복족해야 할 하느님께서 인간 마음에 새겨주신 법

이 양심에 복종하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이 된다고 하며 인간의 가장 은밀한 안방이요 인간이 저 혼자서 하느님과 같이 있는 지성소이며 그 깊은 곳에서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여온다.

- 안방 : 마음 깊은 중심

- 홀로 하느님과 머무는 지성소: 인간이 하느님과 인격적 친교를 나누는 장소

- 인격의 핵심인 초월적 내면에서 들려오는 하느님의 소리가 양심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

양심은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에게 내재하시는 하느님의 빛이며, 하느님과 인간이 나누는 사랑의 대화의 장소이고, 인간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는 소리

양심은 한 사람의 전 생애를 통해 하느님으로부터 계속해서 빛을 받으며 성정발전한다

태아로 어머니 태중에서도 성장하고 때가 되어 사람으로 세상에 태어나고서도 각자 주어진 생애의 시간 속에서 계속 성장하고 성숙해가면서 마침내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신성에 도달하여 하느님 모상으로 창조된 존재의 목적을 이루게 된다

영성생활: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인간화. 신화를 향해 나아가며 신화될 때까지의 전생애

이를 위해 인간에게는 하느님께로부터 이성과 의지를 부여받았고 동물과 구별되는 양심과 자유를 소유하고 있다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로 하느님께 협조함으로서 자기 자신을 신화하는 인간이 되도록 창조해 간다. 이것이 하느님이 하시는 일, 즉 성화사업이고 인간은 그 협조자이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당신 빛인 양심을 주셔서 인간의 자유가 제 구실을 못할 때 이를 깨닫고 바로 잡도록 해주셨다

양심은 인간의 자유가 제 구실을 하도록 하는데 있어 절대적인 지침이 된다

양심은 인간의 성장, 특히 영적 성장을 따라서 계속 성장 발전한다

방 신부의 구원론 이해와 인간관에 비추어 볼 때 아주 중요한 깨달음이며 통찰

영성생활에서 영적성장과 양심의 성장은 함께 가는 것이며 영정성장에 따라 하느님의 빛이 우리안에 점점 더 주어지고 그에 따라 양심의 빛은 더 밝아진다

우리가 마지막 숨 쉴때까지 무한하신 하느님의 빛을 받아 양심은 무한히 밝아질 수 있으니 죽을 때까지 전 삶을 통해서 최선의 노력으로 양심을 성장시켜야 한다

자유의 지침이 양심. 자유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인간의 행복과 불행이 달려있다

세상의 두 주인이 있으니 사욕과 양심이다. 사욕은 악마와 부동자요 양심은 천주의 말씀이로다 영가 시편31. 두주인

양심을 닦아 영혼을 비추어야 한다. 그 빛이 밝으면 살고 어두우면 죽게 될 것 영가 시편33. 양심의 빛

 

(2) 양심불

방 신부의 영성에서 특수하고도 의미심장한 영성어

양심이 경고를 하고 선악을 분별하게 하여 선을 따르게 한다는 차원을 뛰어 넘는 의미

양심+(하느님을 향한 양심의 열정, , 뜨거움, 달아오름)

양심등, 양심등불+사랑의 불(계속된 노력으로 강해진 열심에서 마침내 일어난 치열한 양심불이 마침내 성령의 불, 사랑의 불이다)

우리의 천직인 성화의 입문은 성의로 시작되며 전심전력으로 노력하여 지성이 되면 지성은 감천이 되어 여기에서 열이 나고 열에서 불이 나게 된다. 바로 이것이 사랑이다

즉 노력이 침묵으로 고비를 넘으면, 노력의 결과는 진정한 열심히 치열한 대월의 불을 켜게 된다. 이 마음의 불이 사랑이다. 이 사랑의 극치는 애덕이며 애덕은 세상이 찾아야 할 사랑의 근본이다

양심불은 하느님과 인간 상호작용의 관계에서 드러난다

양심불을 밝히는 것

하느님께서 언제나 자유로이 영혼 안으로 들어오실 수 있도록 마음 문을 열어 두는 것

양심불: 영혼을 밝게 비추어주는 등불이라는 차원을 넘어 하느님을 향해 열정으로 타오르는 불

침묵대월의 삶으로 협조하는 성의노력과 하느님의 은총으로 힘을 받은 영혼이 점점 더 밝아지는 빛의 강화로 치열해지는 양심불로 침묵대월을 통해 마침내 대월 극치의 경지로 나아가 성령의 빛을 받는다면 이 상태의 양심불은 단순한 밝음 그 이상의 것, 성령의 빛이다

성력으로 가득 찬 양심불은 성령의 불로 영혼을 가득 채운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빛으로 참 하느님을 뵈옵고 신비의 신비를 통달하게되는 경지이다.

 

(3)양심불과 영혼침묵

인간의 영혼은 육신을 통해 행동하고 드러나므로 인간은 그 존재 목적을 이루기 위한 자기 수련으로 육신침묵과 영혼침묵을 한다

영혼침묵으로 양심과 자유가 본질 그대로의 상호작용으로 조화를 이루면 육신은 따라서 잘 다스려진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인간의 영적생활에서는 영혼침묵이 주도적 역할을 한다

방 신부가 가르치는 영혼침묵: 이성침묵과 의지침묵

- 이 모두에는 양심이 관계된다

- 인간이 잘사는 길은 천성을 따르는데 있고 천성이 바로 이성과 의지, 동작이 양심과 자유

- 자유는 양심의 소리를 들을 때 하느님을 지향하게 되고, 자유가 사욕으로 실명되면 하느님의 빛을 받을 수 없게 되어 어두움 속에서 죄를 짓는다

- 인갼의 자기실현은 자유의 행사에 의해 이루어지므로 자유가 그 목적을 이루려면 양심의 소리를 잘 따라야 한다

자유는 의지에서 오고 양심은 지성(이성)에서 온다

방 신부가 가르치는 영혼침묵: 사욕으로부터 양심과 자유의 해방

이성침묵: 양심은 영성생활에서 덕으로 나아가는 가장 중요한 첫 문이고 양심불의 기름이 선이므로 선으로 양심불을 켜고 덕으로 양심불의 촉수를 높여 이 불을 환하게 비추게 하는 것이다

의지침묵: 양심불이 필수적인 조건이 된다

- 자유로 하여금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고 받앙들여 자주권을 행사함으로써 하느님과의 합일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므로 의지의 작용인 자유가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양심불을 밝히는 것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 이성침묵으로 양심이 밝아져 선을 알아보고 의지의 동작인 자유에 전달했다고 해도 자유가 자아에 집착하여 선을 선택하지 않거나, 선에서 더 확장된 선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인간의 자주권은 힘을 잃고 무너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4) 양심불과 사욕

양심: 분심잡념과 사욕으로 가득 찬 영의 어두움을 침묵으로 물리치게 하는 가장 중요한 기능, 이 양심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해자는 사욕이다

양심이 밝히 살아 있어야 육신도 살게 된다. 양심이 살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빛을 받아 밝아야 하고 우리 안에 사욕풍파가 일지 않도록 침묵해서 침묵으로 양심을 밝혀 이 양심의 소리를 듣고 사욕을 물리쳐야 한다

하느님을 보고, 느끼고, 맛보기 위한 절대조건은 사욕을 없애는 것이다

사욕을 발견하는 기능은 양심이며 양심은 우리를 비추는 빛이다

영혼은 이 하늘빛으로 주를 뵙게 되고 이 빛으로 영혼이 자란다. 날마다 빛을 받아 밝아지면 날마다 하느님을 더 잘 알고 그분과 절친해진다. 이 생명이 영혼의 빛이니 날마다 주와 친해진다

침묵으로 사욕을 억제하고 양심의 소리대로 선을 잘 행하면 하느님께서는 당신 빛을 그 만큼 더 많이 보내주셔서 양심은 성장발전하여 점점 더 밝아지고 그 양심의 빛으로 영혼은 하느님을 더 잘 따르게 된다

 

(5) 치열한 양심불-열심

우리의 천명이 사랑이신 하느님과 하나 되는 것임을 믿는 굳은 신덕으로 하느님을 향해 영적 생활을 하는 사람은 그것을 방해하는 일체의 사욕을 물리치고 자신을 남김없이 하느님께 내어 드리는 침묵대월의 삶을 살아야 하고 그것을 위해 성의노력하는 실천을 해야 한다

성의노력은 침묵의 생명 이다

하느님의 뜻을 따라 수덕생활인 침묵대월의 삶을 살다가 넘어지면 하느님께서 주신 양심의 경고에 따라 즉시 통회, 정개, 보속하고 다시 시작하기를 계속하는 것이 성의노력이고 열심이다

우리가 이렇게 열심을 내면 기다리고 대기하고 계시는 하느님께서 당신 빛과 힘으로 즉시 도우려 오신다. 그 때마다 하느님은 더욱 더 큰 은총을 보내신다. 우리가 다시 시작하도록 용기를 주시고 하느님께서 직접 은총으로 도우러 오시기 때문에 영혼은 더 힘을 얻고 더욱 열심히 지고 이 열심히 점점 가열되면 마침내 불이 된다

부싯돌로 불을 켤 때 두 개의 불을 자꾸 부딪치면 열이 점점 가열되어 불꼿이 튕기고 마침내 거기서 불이 일어나듯이 자꾸 통회, 정개, 보속하며 열심을 발하면 하느님 은총의 도움으로 우리 안에도 하느님을 향한 열정의 불이 붙는데 이것이 양심불이다

그러나 이 불은 보이지 않는 불로서 5단계 즉, 성의-노력-열심--화염이 치성하는 불로 발전된다. 이 다섯 번째 단계가 애덕이고 여기에 달하게 되면 불은 수고함 없이 발하고 진행된다

 

(6) 양심불의 극치, 성령을 모신 양심불(대월)

완덕오계: 덕으로 나아가는 침묵대월의 삶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놓은 것이다

침묵과 대월을 하느님을 향한 영적 삶에서 그 시기를 나눌 수는 없지만 침묵생활과 대월생활의 치중 강도로 볼 때 사욕을 없애는 극기와 자기억제의 침묵으로 대월의 문이 열린다

침묵으로 주를 찾고 대월로 주를 뵈옵나니 침묵이 말씀을 들으면 대월은 깨닫고 느끼나이다-영가 시편47 십자가의 신비

대월이 깊어질수록 영혼은 하느님의 빛을 더 받게 되고 그럴수록 양심불은 더 밝고 치열해져서 인간의 사랑과 하느님의 사랑이 하나가 되어 그 마음이 불덩이가 된다. 이렇게 양심불은 성령의 빛으로 대월의 극치를 향해 나아간다

영적 삶에서 능동적 정화를 하는 침묵생활을 통과하며 하느님의 빛과 힘에 더 가까이 이끌리어 조금씩 조명의 길에 들어서는 대월에서도 초기,치성,절정 등 하느님과 더 깊은 사랑의 삶, 일치의 삶을 향해 치열한 사랑으로 달아오르는 성장의 시기를 거치게 된다

하느님을 보고 느끼는 정도에 따라 영혼은 하느님을 향해 사랑의 열을 발하고 하느님은 점점 더 밝은 빛으로 그에게 들어오시니 그의 양심불은 더 밝아지고 치열해져서 그만큼 더 하느님께 몰입된다

이때의 양심불은 하느님의 사랑에 의해서 켜지고 불타오른다고 볼 수 있다. 이 양심불은하느님 사랑을 쫓아가는 사랑의 불이다. 주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내 자작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제 하느님 뜻이 내 뜻이 되었으니 그분의 말씀대로만 실행하고, 하느님과 점점 가까워져서 치열한 사랑이 되어 하느님 좋아하시는 것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서 그것만 행함으로써 하느님과 한 마음이 된다

영혼의 눈은 점점 하느님의 눈이 되어 하느님 좋아하시는 것과 아닌 것, 하느님 듯인 것과 아닌 것을 밝히 볼 수 있는 눈이 생긴다. 사랑으로 치열해진 양심불로 영적인 눈이 밝아진 영혼은 자신안에 하느님 좋아하시지 않는 사욕은 먼지와 털끝만한 것이라도 알아내어 없애고 하느님이 좋아하시는 일에만 몰두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하느님을 찾아 나서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한 영혼이 오직 하느님만을 향해 갈 때 그는 모든 것을 떠나는 열이 되고 모든 것을 불살라 뛰어넘는 불이 되어 하느님께 넘어 들어가 마침내 하나가 되는 치열한 사랑,애덕이 된다

하느님 사랑의 불로 조명을 받아 사랑의 불이 된 양심불로 밝혀지고 불타오르는 영혼은 수동적 정화기를 거쳐 조명기에 들게 된다. 그 양심불은 바로 하느님의 빛하느님 자체가 오신 성령을 모신 양심불이며 성령의 빛으로 조명된 성력을 보신 양심불이다. 이를 보고 기뻐하시며 비추시는 임의 광채 또한 성령이시다. 성령의 빛으로 불타오르는 치열한 사랑 양심불에 사랑자체이신 성령의 불이 오셨으니 그 양심불은 성령으로 불타오른다

이렇게 면형으로 간 무아는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 극치를 이룬다. 여기서 말하는 무아는 벌써 예수님과 하나 된, 즉 하느님과 하나된 무아이고 양심불은 그 무아의 양심불이다

 

(7) 양심불은 영원한 기도

방 신부는 양심불이 밝은 사람은 잘 때에도 (하느님께 향한 사랑으로 불타는) 양심불을 밝히고 하늘빛을 부르며, 몸은 자도 양심은 깨어 자면서도 끊고 탄다고 하였다

몸은 자도 마음은 깨어 양심불을 켜고 기다린다는 뜻은 양심불이 밝은 사람은 자면서도 기도한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무한하시기 때문에 양심불의 밝기와 치열함은 제한이 없다

하느님과 함께 사는 대월생활에도 성의 노력의 정도에 따라 양심불의 밝기가 각자 다르고 이에 따라 각자 하느님과 친교의 정도도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느님기 허락하신 생이 다할 때까지는 선에서 선으로 덕에서 덕으로 나아가 덕 중 덕인 애덕에 이르기까지, 사랑에서 사랑으로 오르다가 영원한 사랑과 하나 될 때까지 양심불을 계속해서 밝혀야 한다. 그래서 양심불은 영원한 기도다

하느님께로 고양된 양심불은 하느님의 신비를 비추는 초월의 빛이다. 양심은 전 영성생활을 통해 상장발전한다

이 양심은 하느님의 은총에 협조하게 하면서 그 사람이 사랑이신 하느님과 일치할 때까지 전 영성생활의 성장과정인 침묵대월생활의 지침이요 길잡이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하느님과 영혼의 친교의 자리로서 양심이 사랑의 양심불이 되기까지 무한히 밝아지고 치열한 열애가 되어 인간이 신화에 들어가게 한다

영혼이 침묵대월의 절정에 이른다면 비록 잠을 잘 때에도 하느님과 하나되어 하느님과 친교중에 양심불이 불타오르게 되니 우리는 자면서도 기도하며 하느님과 친교중에 있을 것이다

우리가 협조를 거부하지 않는 한, 이불은 결코 꺼지는 일이 없다

성령의 빛으로 불타오르는 사랑의 불이 성령의 불과 하나가 되고 하느님과 일치한 하느님 사랑의 불이 되어 끊임없이 타오르는 그 기도는 하느님과 우리가 갖는 사랑의 관계 맺음의 진수이다.

이제 우리는 영적 삶에 있어 양심과 양심을 따르는 살, 양심불을 밝히는 삶을 완덕오계에 배이고 스미게 하여 실천하여야 한다. ‘완덕오계대로 사는 자가 성령강림을 치르는자 이기 때문이다

4계에서 양심불을 밝히고는 영혼이 하느님 안에서 깨어있어 노력으로 열이 되고 불이 되고 사랑의 불이 되고 열애가 되어 성령을 맞아들인 성령의 불이 될 때 까지 밝혀가고 밝히고 있으라 하는 것이다

영적 삶안에서 양심은 한 인간이 하느님과 맺는 친교의 자리가 된다

양심은 한 개인이 존재하는 순간부터 그의 성장을 따라오시면서 빛으로 밝히시고 말씀하시면서 그와 둘만의 내밀한 관계를 맺어 그 안에 내재하는 하느님의 자리이다

양심불을 밝히는 일: 성령의 비추심을 따라 점점 더 성화하여 성화의 극치인 신화에 이르기 까지의 전 영성생활을 하도록 이끄는 중심이 된다.

 

smiley 주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으로 올해 입회, 착복 서약하신분들께 큰 박수를 보냅니다

 

smiley 11월 양성자반 숙제 (한가지 선택하여 이름과 기수를 적어 나눔 후 제출

1. 입회, 착복, 서약식에 어떤 울림(체험)을 받았나요?

2. 입회, 착복식을 바라보며 어떤 울림을 받았나요 ?

3. 아파하는 지구를 위해 재속복자회원으로서 나는 어떤 실천을 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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