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지순례지 : 복자윤봉문요셉의 성지, 유섬이의 묘
- 순례지 복자윤봉문요셉의 성지
거제도 진목정 족박골(현 옥포)에는 ‘거제의 사도’로
불리는 순교복자 윤봉문 요셉의 묘
신유박해 당시 신자들의 유배지였던 거제도에
병인박해 직전 리델 신부가 전교를 위해 다녀가면서
복음의 씨앗이 뿌려졌고,병인박해가 한창이던
1868년경 박해를 피해 거제로 들어와
진목정에 정착한 윤사우 스타니슬라오가 활발한
전교활동을 펼쳤습니다.
윤봉문은 윤사우의 둘째아들로 진 아녜스와 혼인하여
아들딸을 낳고 살면서 형 경문 베드로와 함께
신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전교에 힘썼습니다.
순교자의 시신은 진주 장재리 공소회장이
거두어 공소 뒷산에 안장했다가
1898년 옥포 교우이며
부산 본당 우도 신부의 복사로 있던
성낙진 바오로와 유족들에 의해 옥포의 선산으로
이장했습니다.
거제도의 신자들은 1978년 9월
윤봉문 요셉 순교 90주년을 맞이하여 순교자의
무덤에 순교 기념비를 세웠고,
거제와 통영 지역 본당들은 순교자에 대한
현양 사업과 함께 묘지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였습니다.
거제도 일운면 지세포리의
순교복자 윤봉문 요셉 성지는 옥포의
순교자 묘소가 산중에 있어 접근이 어렵고
또 후손들의 선산이 타인 소유로 넘어가자
새로운 이장 부지로 선정된 곳입니다.
거제도 신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십자가의 길과 묵주기도 길이 조성되었고,
중앙에 순교자 현양비도 건립되었습니다.
- 거제도 순례지 순교자 유항검의 딸 유섬이 묘에서
섬마을에서도 한참을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이곳
물어물어 산길을 따라가야 겨우 찾을 수 있는 이곳
잘 꾸며져 있지 않은 이곳에
쉽게 찾을 수 없는 이곳에...
유섬이의 묘 앞에서 그 분이 어떠했을지 생각하니
가슴이 사무치도록 아려옵니다.
9살 나이에 부모 형제를 모두 잃고 떨어져 외로운
삶을 살아내셔야 했을 유섬이의 삶..
하지만 부모의 거룩한 죽음 앞에서
고결하고 품위 있게 살다 생을 마감하신
유섬이의 묘 앞에서
하느님의 자비로운 손길을 느낍니다
평화의 안식을 얻으시길 기도합니다.
유처자 묘 - (묘지 앞 푯말에서 옮긴 글)
거제시 거제면 내리 산53 2번지 대
1801년 천주교도에 대한 박해가 극심해지면서
순교한 유항검(46· 아우구스티노)과 그의
식솔들은 한국 천주교 역사에 길이 남는 인물이다.
유항검과 함께 순교한 그의 동생 관검과
제수 이육회,그의 부인 신희, 장남 중철과
맏며느리 이순이, 차남 문석,조카 중성 등으로
이들 모두 2014년 시복됐다.
순교자들이 처형된 뒤 교우들이 유항검의 고향인
전북 완주군 초남리와 가까운 바우배기에
임시로 매장해 놓았던 것을
1914년 4월 19일 전주 전통성당 보두네 신부와
신자들이 동생 관검을 제외한 유항검 등
7명의 순교자들을 합장해
전북 전주시 완산구 바람쐬는길 89
치명자산성지로 옮겨 왔다.
치명자산성지는 전라북도 지방기념물 제68호로
지정됐다.
항검의 자식 가운데 열다섯 살이 안 된 아들과
딸들이 유배를 갔지만 어느 곳에서도
기록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유항검의 자식 중에 '유섬이'란
딸이 거제에 묻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성래 박사 전 수원교회사연구소 고문)가
거제도호부사를 지낸 하락 (1825~1904)의 문집
'사유집(편F:13)'의 해제를 집필하던 중
우연히 '유섬이' 에 관한 기록을 찾게 된다.
묘 옆 바위에' 칠십일세유처녀지묘'라고 묘 비를
새겼다는 '사헌유집' 의 기록을 근거로
2014년 유섬이의 묘를 어렵게 찾아냈다.
유섬이는 1801년 신유박해 당시 아홉 살이었던
유항검의 딸로 거제도호부 관비로 유배를 왔다.
유섬이가 세상을 떠나자 하락 부사가
장례비용을 치르고,
제문을 지어 바치고 묘비를 세워주었다.
유섬이는 1801년 10월 거제도에 도착해
당시 거제부사(이영철)의 배려로 거제면 내리
한 할머니의 수양딸로 보내졌다.
그녀는 거제에 머물면서 동정녀로서
삶을 살아가야할
종교적 신념으로 마을 사람들 중매도 거절했다.
그녀는 평생 혼자 살면서 거제에서 처음으로
회양적(산적)을 만들어 마을사람과 나눠 먹는 등
함께 어울려 지내다.
1863년 7월 일흔 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