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월일칙`은 하느님을 대면하는 것으로 자유행동, 자작행동 하지 말아야 한다. ....
이 자유는 하느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생활하게 하신 자유이니 이 자유를 누려야 하느님께로 가게된다.
규칙을 거스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말아야 하며 본성으로 죽어야 영적으로 산다.
`대월이칙`은 하느님께서 우리가 하느님 사람이 되기 위하여 가르쳐 주신 것을 알았으니 실천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열심히 사는 것은 하느님 가르쳐 주신 대로 하는 것인데 그러나 잘못 했을때는 통회,정개,보속 해야 한다.
우리는 항상 노력해야겠다는 자세를 끊지 말아야 하는데 간단없는 기도가 바로 이것이다.
여기서 열심이 나고 이 열심은 무한히 죽을 때까지 자란다.....
`대월삼칙`은 삼단계로 하느님과 가까워지는 것이다. 이는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것만 해야 된다.
이렇게 하느님의 뜻대로 해야 되는데 열심히 기도하는 것을 안 들어 주신 것이 없다.
"내가 불을 놓으러 왔으니 타는 것밖에 바랄 것이 무엇이냐." 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하느님께 바치는 수도생활이 불에 타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느님은 형식적인 것을 원하지 않으시고 마음을 원하신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는 태우는 기도가 백발백중이니
이 모든 것은 하느님의 영광대로 되어지기를 기도함이니 이 기도보다 더 좋은 기도는 없다. 이것은 화살기구에 비할 것이 아니니 전격적인 기도이다.
이렇게 하느님 좋아하시는 것만 하면 된다. 하여 가득한 열심에서 불이 나고 거기서 빛이 나서 이 빛 가운데서 하느님을 만나 뵙게 되니
이것이 삼단계의 하느님을 뵙는 것이다. 이렇게 떠날래야 떠날 수 없는 나하고 일치하시는 하느님이시다.
이러한 하느님은 내 영혼 노릇을 하시니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아버지가 행하신다.
영혼이 살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하던 것이 이제는 하느님으로 살고 하느님으로 생각하고 하느님으로 행동하고 하느님으로 말하는 것,
이 하느님은 떠날래야 떠날 수 없는 하느님이시다. 면형이 예수님을 떠날 수 없는 관계가 있듯이 우리도 하느님과 이렇게 결합하게 되는 것이다 (439~440쪽).
-- "순교의 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