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에 가면 올리바 산 위에 예수 승천 경당이 있습니다.
그 곳에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셨을 때에 남기신 큰 발자국이 바위에 새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이 바위에 그런 발자국을 남기셨는지 그것은 모릅니다.
하지만 주님은 분명히 사도들의 마음속, 그들의 정신과 삶 속에 큰 발자국을 남기고 가셨습니다.
사도들은 그 지울 수 없는 마음속 깊이 새겨진 발자취를 따라서 주님을 뒤따랐고,
그리하여 주님과 일치하였을 뿐 아니라, 그 뒤를 잇는 온 교회, 하느님 백성 전부도 같은 발자취를 따라가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앞에 누워 계신 무아 안드레아 방유룡 신부님, 신부님은 한국 교회에 비슷한 큰 발자국을 남기신 분이십니다.
그것은 여러분에게 있어서 지울 수 없는 것일 뿐 아니라, 더욱 깊이 삶으로써 발전시켜 가야 할 보배로운 유산입니다.
저는 감히 이 자리에서 신부님을 저보다 훨씬 잘 아시는 여러분 앞에서 신부님의 가르침이 무엇이었다고 말할 자격은 없습니다.
신부님이 평소 최고 이상으로 생각하실 뿐 아니라 당신 아호로 삼으실 만큼 좋아하신 ` 무아 ` 이 하나만 해도 그 뜻을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무아는 진정 우리를 밝혀주는 빛이요, 우리를 진리와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길이요, 우리를 그리스도와 닮게 하고 그분과 일치시키는 은총입니다.
그것은 또한 하느님 나라와 그 의덕을, 하느님 뜻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는 믿음, 순종, 자아포기, 자신의 전적인 봉헌, 사랑입니다.
무아 방유룡 안드레아 신부님은 제가 감히 말씀 드린 것 그 이상의 깊이로 무아의 참 경지를 깨달으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지금 신부님의 영복을 빌면서, 당신의 몸 전체, 삶 전체로 우리에게 말할 수 없이 큰 가르침을 남기신 신부님께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신부님의 이 고귀한 정신적 유산을 신부님이 창설하신 남녀 수도회에서 깊이 사시고 발전시키시며, 신부님이 뜻하신 대로
우리 교회와 사회 속에 빛이 되시길 빕니다.
1986년 1월 27일 명동성당 장례미사 때 김수환 추기경 강론